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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홍천용씨와 고려재조대장경이란 글에서 언급한 바도 있으나, 홍천용씨의 득성유래와 귀화시기, 그리고 시조 득의공의 관련한 자료조사를 하여 오던중, 뜻하지 않게 자료하나를 발굴하게 되어 여기에 글을 올리고자 한다.
고려중기의 문신인 金振鐸(김진탁)은 생몰연대가 1131년 (고려 인종 9년)~1188년 (고려 명종18년)으로, 1166년(고려 의종20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禮賓丞同正(예빈승동정)까지 올라온 인물이며, 그의 나이 58세로 사망하였다.
고려 문신 김진탁은 조부가 尙書都事(상서도사)를 지낸 김유방(金惟訪)이며, 부친은 試閤門祗候(시합문지후)를 지낸 김관부(金寬夫)이며, 모친은 홍천용씨이시다.
묘는 용은사(龍恩寺)의 서북쪽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1188년 해서로 돌에 새긴 김진탁의 묘비명이 현재 일본 관서대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예빈승동정 김진탁의 본관을 확인하지 못한 부분과 외가(外家)의 外祖父(외조부)와 모친이신 홍천용씨의 가계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다.
이 기록에 나타난 고려문신 김진탁은 고려 인종 9년인 1131년에 태어나서 1188년에 졸하였다는 사실적인 기록이 나오는데, 생몰미상인 시조 득의공께서 1241년(고려 고종28년)에 문하시중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어, 고려 문신 김진탁이 태어난 시기와 득의공이 문하시중에 이르는 시기가 110년의 차이가 생기는데, 득의공께서 문하시중에 올랐던 시기(나이)를 대략적인 추정나이로 50~60세라고 가정한다면 50 ~ 60년정도 차이가 나며, 모친 홍천용씨와는 80년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뤄 봤을때 우리 조상인 홍천용씨는 고려후기에서 발생된것이 아니고, 이보다 훨씬 앞선 고려초기에 이미 고려에 귀화정착하게되어 고려시대 전후반과 조선초중기까지 명문거족으로 번창했던 집안이었다라고 볼수 있다. |